Vietnam News Letter Vol. 53
환율 전쟁과 세계 대전(1부)
2010년 10월 10일
한재진 (cult1212@gmail.com; +84-93-373-8880, +82-707-539-2348,
+82-10-8769-4222)
CEO, Hanuer Investment & Consulting
1930년대 미국발 경기 침체는 세계 각국의 관세 장벽을 높이는 노력으로 나타났으며 수출을 늘리고 자국 경기를 부양하려던 이러한 각국의 노력은 되려 전세계적인 무역 침체를 나았고 결국 전세계적인 대공황으로 연결되었다. 당시의 교훈을 되새기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주요 국가들이 위기의 시점에서 이기적인 보호 무역을 지양하고 공동 경제 회복을 위한 정책 보조를 합의한 바 있으며 실행 주체로서 G7을 확대한 G20를 발족시켰다. 그러나 IMF 총재가 "최근 세계 경제가 불균형한 회복세를 보이면서 지난 2008년에 약속했던 글로벌 공조 정신이 약해지고 있다"라고 표현하는 바와 같이 국제 공조 체계는 “환율 전쟁”이라는 섬뜩한 단어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
쉽게 말해 현 상황은 중국은 “내가 싸게 팔겠다는 데 무슨 말들이 많으냐, 사기 싫으면 사지를 마라”는 입장이고 미국은 “모든 국가가 고통을 분담하는데 너만 혼자 크겠다는 거냐”는 식의 시비이다. 서양과 동양의 상도의(商道義), 영어로 Fair Play에 대한 인식 격차를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의 입장
전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이 과거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지켜 보았기에 미국과 유럽이 현재 요구하는 내용의 결과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이에 대하여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위안화 환율의 안정이 없다면 기업과 고용, 사회적 안정도 없다. 또 중국이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겪는다면 세계적인 재앙이 될 것이다."라며 현재 미국과 유럽의 대중 무역적자는 무역구조의 문제이지 환율의 문제는 아니라고 강조하며 위안화 환율이 불안정해지면 세계경제에 재난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급격하게 위안화를 절상할 경우, 중국의 수출기업들이 큰 타격을 받으면서 실업이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농민공(農民工)을 포함한 중국의 실질적 실업률은 8%대로 추산된다. 무려 1억4000만명이 실업자이다.
중국 수출의 핵심인 임가공 기업의 마진은 평균 3%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안화 가치가 5% 이상 절상되면 이러한 임가공 업체의 대부분이 단기적으로 생존 방안이 없으며 이러한 임가공 수출업체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2500만명이 넘어 환율의 급작스러운 절상은 농민공의 실업 문제가 아니라 도시공의 실업 문제로 발전하며 궁극적으로 사회적 위기로 중국은 소위 말하는 대재난에 빠지게 된다.
안 그래도 부(富)의 불균형 문제가 누적된 사회 불만이 급증한 중국에서 이러한 상황은 현 정권에게 관리 불가능한 상황을 의미한다.
지난 5월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전략경제대화(SAED)에서 중국은 연간 3% 내외의 점진적인 위안화 절상과 미국 제품 구매 확대 등을 제시한 바 있으나 과거 플라자 합의 때 엔화 조정과 같은 20~40%의 급격한 평가 절상을 요구하는 미국의 요구를 충족할 수준은 아니었다.
미국의 입장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계속되는 경기 침체 속에서 미국은 현재 내수 소비와 투자 부진으로 인한 더블딥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재정 지출을 통하여 일시적으로 회복하던 경기는 일자리가 늘어나고 소득 증대와 소비 진작이 이루어져서 투자 증대로 이어져야 하는데 실업률은 계속 증가하여 9%대로 30여년래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지속되는 미국의 재정 적자 증가와 최근 불거진 유럽발 재정 위기에 따라 달러화의 기축 통화 기능 부실이 우려되며 중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지역권별 기축 통화 논의를 개시하였고 주요 국가간 환율전쟁의 그림자가 시작되었다.
사실 재정지출 확대나 금리인하의 약발이 다하고 지속적인 재정 지출이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은 위안화 절상을 통한 수출 증대와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새로운 성장 전략으로 삼은 셈이며 속으로는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지역권 기축통화론(基軸通貨論)에 쇄기를 박으려는 생각이다.
금년 7월까지 미국의 무역적자 2900억불 중에서 대중국 무역적자는 절반인 1450억불에 이른다. 미국의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는 "위안화가 25% 절상되면 미국의 대중국 경상수지적자는 500억~1200억달러 줄고 일자리는 50만개가 늘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당연히 이러한 새로운 성장 전략의 신선한 목표는 중국이다.
유럽연합과 IMF가 미국 편들기에 나서더니 이제는 세계은행 총재까지 "역사적으로 이웃을 가난하게 만드는 정책은 단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며 중국 때리기에 미국 편들고 나섰다.
일반적 향후 전망
지난 1985년 G5(프랑스, 독일, 미국, 영국, 일본) 재무 장관에 의한 플라자 합의, 그리고 1987년 G7 재무장관 회담에 의한 루브르 합의에 이어 이번 11월 서울 G20 정상회담에서 어떠한 합의가 이루어 질지가 향후 세계 무역 질서의 방향이 될 것으로 보는데 실제 이번 서울회의에서 합의가 이루어지기에는 양쪽이 의견차가 너무 큰 상태이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 대공황에 이어 2차 대전으로 치달았던 경험을 살피며 이번 환율 전쟁이 서로간의 목소리 높이는 치킨게임(Chicken Game•서로 상대방을 향해 차를 돌진시키다 먼저 방향을 트는 사람이 지는 게임)으로 끝날 것이라는 전망을 하지만 양국의 이해에 따라 실제로 상황은 우리가 원치 않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가 있다.
게다가 이번 환율 전쟁이 과거와 달리 기축통화에 대한 고려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쉽게 마무리가 되기 어려울 것이며 미봉책이 사용되더라도 결국 수년 내로 재개될 뜨거운 감자인 것이다.
이번 글을 통하여 과거 대공황과 2차 세계 대전 시기의 역사를 살펴보며 향후 이번 환율 전쟁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시나리오에 대하여 검토해 본다.
1차 세계 대전과 금본위제
많은 경제 학자들이 1930년 세계적인 대공황의 주요 근원 원인으로 금본위제를 탈피한 국제 통화 시스템의 불안정을 뽑는다.
산업 혁명 이후 1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영국을 중심으로 주요 국가의 협력에 의한 금본위 고정 환율제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금본위제도는 여러 국가의 무역 결제에 있어서 효율적이었고 자유무역와 국제무역 규모 증대에 큰 영향을 주어 세계 경제 발전을 이끌었다.
1차 세계 대전은 각국이 상품은 물론 자본을 포함한 전쟁물자 생산요소의 이전을 억제하는 총체적 봉쇄가 이루어 지던 시기로서 금 유출은 금지되었고 금본위제도의 근본인 금의 자유로운 수출입이 정지되며 금본위제도는 폐지되었다. 1914년에서 1918년까지 4년간 치러진 1차 대전 끝난 후에도 전쟁 재건으로 인하여 폐지된 금본위제도는 재건이 쉽지 않았고 이에 따른 국제거래의 비효율성이 유럽 각국에서 다양한 문제를 야기하면서 경기 침체를 지속하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전쟁 전 세계 통화 체계의 중추였던 영국은 전쟁으로 인하여 국제경제에 있어서 그 위상이 상당히 약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전적 금본위제 하에서의 역할을 다시 수행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1925년 파운드화의 가치를 고평가하며 금태환을 재개한다. 이러한 인위적이고 타국가의 공조 없이 이루어진 고평가 체계는 당연히 수출 부진을 가져 왔으며 실업률 증가 및 경기침체로 발전한다.
미국의 경기침체
당시 미국은 사실 전쟁에 대한 피해가 거의 없다시피 했고 전쟁 재건에 필요한 여러 물자를 유럽 시장에 수출하며 전세계 최대 공업국가로 성장하는 중이었으며 뉴욕이 이를 받쳐줄 새로운 국제 금융 중심으로 전세계의 자본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새로운 세계 생산 기지로서 미국 산업계로의 자금 이동이 미국 외의 국제 금융 시장에 자금부족과 금리인상을 이끌었으며 당시 비교적 높은 대외 채무를 지고 있던 1차 산업 국가들이 높아진 금리를 지불하기 위하여 수출을 늘리며 국제 농산품 가격을 폭락시켰다.
미국의 주요 수출품인 밀의 가격만 하더라도 1929년에 비해 1930년에 약 40% 하락하였으며 이러한 농산품 가격 폭락 현상은 당시까지 경제의 중추를 담당하던 미국 농업 경기 침체와 이로 인한 전반적인 소비 감소로 나타난다.
농촌의 소득 감소로 인한 소비 감소, 농촌 은행들의 파산 등 경제 불황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미국 정부에서는 관세를 인상해 농촌을 살려보려고 했다. 이러한 정책은 다른 나라의 보복관세를 불러 일으키었고 마침내는 관세전쟁의 양상으로 진전되었다. 관세 전쟁은 국제무역규모는 1929년 2966억불 수준에서 4년만인 1933년 944억불 수준으로 급감시킨다.
미국에게 최대 수출 시장이었던 영국이 금본위제 복귀 노력으로 경기 침체를 겪는 가운데 관세 전쟁으로 인한 무역 규모 축소는 미국의 수출 경쟁력을 극도로 약화시켰으며 미국의 무역 흑자 규모는 1928년에 약 10억불, 1929년 8억불, 1933년 2.5억불, 1936년 3300만불 수준까지 하락한다.
전쟁 물자 공급 중에 산업 고도화에 따라 인당 생산성이 극대화된 미국 산업계는 수익성이 늘고 있었으나 임금 체계는 그대로 유지되는 비정상적인 부의 불균형 축적이 지속되고 있었으며 산업 생산성 증가에도 불구하고 이에 적합한 소비의 증가가 나타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축적된 기업내의 자금은 국제 경제 상황 악화에 따라 투자로 연계되지 못하였다.
농업 소득 감소, 노동자 소득의 불균형, 그리고 주식시장의 폭락으로 인하여 개인 소비가 급감하였으며, 투자, 무역 수지가 모두 감소하여 극도로 취약한 수요를 보이는 상황에서 경기 침체 초기 미국 정부는 적자재정을 편성하여 과감한 재정 지출로 이러한 부족한 수요를 충족하려 했다. 1929년 미국 정부는 13억불의 재정흑자를 기록했으나, 1930년부터는 지출 증가와 조세감면을 통해 적자재정을 편성하여 재정적자가 32년에는 27억불을 기록한다. 그러나 1932년 6월 재정적자의 증가로 인하여 금본위정책에 위험이 생기자 대규모 조세 증대로 재정 정책을 전격적으로 전환하며 대공황에 기름을 부었다.
기축통화 헤게모니 쟁탈전과 유동성 함정
영국이 1925년 금본위제로의 복귀를 선언하자 프랑스와 미국 역시 금본위제로 복귀하였다. 프랑스의 경우 현실적인 환율을 적용하며 금본위제를 실시한 반면에 영국과 미국의 경우 전세계 금융시장의 헤게모니 쟁탈전 양상으로 자국 통화를 고평가한 금본위제를 실시하며 자국 통화를 기축통화하고 투자를 유치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의도는 결국 미국으로 하여금 1932년 재정 정책을 경기 부양과 정반대로 진행하게 하였다.
결국 1931년 영국이 환율 방어를 포기하고 금본위제를 이탈하였고 파운드화는 폭락하며 달러화에 국제 기축 통화 자리를 내어 주었다. 이에 반하여 미국은 새로운 기축 통화로서 금본위제에 집착하였으며 이를 위한 1932년 통화 긴축 정책이 1932년 10월부터 1933년 3월까지의 3차 은행위기를 발생시켰고 은행에 대한 신뢰가 파괴되어 현금을 가지고 있는 민간이 예금을 기피하고 현금 보유율을 증가시켜 민간은행의 신용창출 기능이 극도로 억제되는 통화 증발 현상이 나타났다.
국가가 10이라는 본원 통화(M1)을 신규로 발행하면 해당 금액은 은행을 몇 차례 거치며 신용이 창출되어 총통화량이 된다. 즉, 정부로부터 나온 현금이 은행에 입금되었다가 지급 준비율만큼의 자금을 남겨두고 대출이 되면 대출된 금액이 통화량으로 추가되는데 또 다시 이 대출된 돈이 다시 은행으로 재입금되고 은행은 다시 이를 대출한다. 이론상으로 본원 통화 X가 발행되면 총신용창조액은 X곱하기 (1/지급준비율)로 나타난다. 즉 지급 준비율이 10%이면 본원통화의 10배의 총신용창조액이 발생한다.
이때 “통화승수”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실제 총통화량을 본원통화로 나눈 수치를 말한다. 이 수치가 이론 수치에 비하여 많이 작으면 돈이 안 돈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1932년 미국 시민들의 은행에 대한 기피 현상은 이러한 신용 창출 기능 상실을 가져왔고 정부가 아무리 돈을 풀어도 시중에 실제 통화량이 증가하지 못하는 유동성 함정이 나타난다.
영국에 이어서 결국 미국도 1933년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평가 절하를 지지하지만 이미 시작된 유동성 함정과 무역 규모 축소, 그리고 각국의 수요 감소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었고 전세계적인 대공황은 더욱 심화되어 상황은 2차 세계대전을 향하여 달려간다.
2차 세계 대전 발발의 경제적 요인
대공황 이전에도 영국, 프랑스는 방대한 식민지를 확보하고 있었으며 이들을 통합한 블록화된 경제 체계를 구축하고 있었으며 미국 역시 자국의 방대한 자원으로 충분한 경제 규모가 구축되어 있었다. 그러나 새로이 세계 경제 무대에 등장한 독일, 이태리, 일본 등의 자본주의 후발 국가들은 식민지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 등과의 무역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대공황에 따라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경제 대국이 식민지를 기반한 보호무역주의를 취함에 따라 자본주의 후발 국가들은 큰 타격을 입는다. 이러한 대공황 상황에서의 보호 무역 주의와 환율 대전은 5년이 지난 후에야 독일의 재무장과 라인란트 비무장지대로의 진군이라는 사건에 긴장한 영국, 프랑스의 양보에 의해 1936년 미국, 영국, 프랑스 3국의 합의에 이르며 마무리된다.
대공황을 지나며 식민지 확대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껴온 독일, 이태리, 일본 등의 자본주의 후발 국가들은 대공황 기간 중에 군비 확충에 열을 올렸고 결국 기존의 열강과의 전쟁을 통한 식민지 확보가 유일한 살 길이라는 절대 과제 하에 1939년부터 6년간 4700만명의 목숨을 앗아 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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